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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흩날릴 제 - 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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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노트  ​

나는 부안에서 나고 자랐다.학창 시절 국어시간에도 매창은 조선을 대표하는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배웠고, 부안이라는 지역 안에서 그녀의 이름은 역사 속 인물 이상의 친숙함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도 부안에는 매창을 기억하는 여러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특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조선의 인물을 인형으로 표현한다면 매창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매창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온 기록이 하나 있었다. 허균이 남긴 기록 속 매창은 빼어난 미모로 사람을 사로잡는 여인이라기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풍정과 재능을 지닌 인물에 가까웠다. 그 기록을 읽으며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번 작품에는 어머니를 모델로 제작했던 ‘영란’ 인형의 얼굴을 사용하였다. 어머니 역시 화려하거나 전형적인 미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오래 바라볼수록 그 사람만의 매력이 느껴지는 분이다. 내가 상상한 매창의 모습과 어머니의 얼굴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작업은 나의 개인적인 기억과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화우 흩날릴 제》는 매창의 시와 삶을 따라가며 만든 작품인 동시에, 일흔 번째 생신을 맞은 어머니께 드리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고향에서 오랫동안 기억되어 온 한 여인의 이야기에,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보아 온 한 여인의 얼굴을 담았다.

Research & References

1. 매창梅窓, 시와 거문고를 가까이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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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중기 부안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예인이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이며, 계유년에 태어나 ‘계생’ 또는 ‘계랑’으로도 불렸다. 부안의 기생이었던 매창은 시문뿐 아니라 노래와 춤, 거문고에도 능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유희경·허균·이귀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시를 주고받았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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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매창에게 시와 거문고는 중요한 예술적 표현 수단이었다. 관련 기록에서는 그녀가 거문고를 잘 연주했다고 전하며, 사후에는 생전에 아끼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부안 지역에서도 이러한 매창의 문학과 예술적 삶은 오랫동안 함께 기억되어 왔다. [자료출처: 부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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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집梅窓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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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은 생전에 수백 수의 한시를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대부분 흩어져 사라졌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58년이 지난 1668년(현종 9), 부안의 아전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시를 수집하여 58수를 선별하고 변산 개암사에서 목판본 『매창집(梅窓集)』을 간행하였다. 2권 1책으로 구성된 한시집으로, 오언절구 20수, 칠언절구 28수, 오언율시 6수, 칠언율시 4수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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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집』의 발문에는 매창이 평생 시를 잘 지었으며, 그녀가 지은 수백 수의 작품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전해졌지만 대부분 흩어져 없어졌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후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지역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기억하고 전승하여 시집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당대와 후대 부안에서 매창의 문학이 어떻게 기억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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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흩날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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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의 이름과 함께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작품이 「이화우 흩날릴 제」이다. 이 작품은 『매창집』에 수록된 한시가 아니라 후대 시조집인 『가곡원류』에 전하는 시조이며, 『가곡원류』에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작품이라는 주석이 덧붙어 있다.[자료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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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속 매창 — 허균이 바라본 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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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1601년 부안에서 매창을 만나 교유하였고, 당시의 인상을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조관기행(漕官紀行)」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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貌雖不揚 有才情可與語
용모가 비록 빼어나지는 않았으나, 재주와 정취가 있어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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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기록에서 흥미로운 점은 매창을 뛰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외모보다는 그녀가 지닌 재능과 정취, 그리고 대화를 나눌수록 드러나는 사람으로서의 매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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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은 시에 능했을 뿐 아니라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할 줄 알았으며, 허균을 비롯한 당대 문인들과 시와 문장을 나누며 교유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매창을 단순히 아름다운 기생의 이미지로 바라보기보다, 예술적 재능과 지적인 교유를 통해 사람을 끌어당겼던 인물로 이해하게 한다.[자료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2. 복식과 장식
매창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초상이나 시각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는 매창이 활동했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의 여성 복식을 중심으로 회화자료와 출토복식, 복식사 연구자료를 함께 조사하였다.

기영회도__16C_머리모양_참고.jpg
기영회도(1584,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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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낭관계회도( 조선전기, 국립중앙박물관)
《기영회도》와 《호조낭관계회도》를 비롯한 동시대 회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살펴보고, 16세기 여성 출토복식 자료를 통해 저고리의 길이와 형태, 치마의 구성과 당시 복식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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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치마는 당시 복식자료에서 확인되는 전단후장형(前短後長形) 치마의 구조와 착장 형태에 관한 연구를 참고하여 제작하였다. 앞뒤 길이와 착장에 따라 만들어지는 치마의 형태를 인형의 스케일에 맞추어 적용하고, 저고리 역시 후대의 짧은 저고리가 아닌 16세기 여성복식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긴 형태를 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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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모양 역시 후대 풍속화의 기녀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기보다는 동시대 회화와 복식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성의 머리 형태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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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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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의 형태는 시대적 자료를 참고하였지만, 색채는 고증에만 따르지 않고 작품의 주제에 맞추어 재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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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이 된 매창의 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에서 떠올린 이화(梨花), 즉 배꽃의 이미지를 복식의 색채에 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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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을 연상시키는 흰색을 저고리의 중심색으로 사용하고, 연한 황색과 분홍색을 부분적으로 더해 꽃이 지닌 부드러운 색감을 표현하였다. 여기에 녹색 치마를 배치하여 봄의 생명감과 배꽃이 피어 있는 풍경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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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작품의 복식은 16세기 말 여성복식의 형태를 바탕으로 하되, 색채에서는 「이화우 흩날릴 제」의 시적 이미지를 더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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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문헌
  1. 송미경, 「16세기 여성 복식에 관한 연구 — 남양홍씨 몽남(1534~1574) 배위 연안김씨 묘 출토복식을 중심으로」, 『복식』 57(8), 2007.
  2. 정주란·김용문, 「조선전기 출토 여성복식의 유형과 특징에 관한 연구」, 『복식』 67(1), 2017, pp.147–168.
  3. 「15-16세기 전단후장형(前短後長形) 치마의 조형적 특징과 착용양상」
  4. 《호조낭관계회도(戶曹郎官契會圖)》, 약 155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5. 《기영회도(耆英會圖)》, 158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제작 과정

전시이력

2023. 10. 3 ~ 10. 8 제 1회 정기작가전 < 비스크, 전통을 입다 >
2023. 11. 28 ~12. 4 제1회 한국아트돌작가협회전 < 비스크돌 이야기 >
2026. 8.5 - 8.8  < 결 > - 비스크로 남겨진 시간의 기록​
제작 후기